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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_헤르만 헤세

표지가 아주 적절하다.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 소리를 담대하게 따라가는 것. 그 소리를 세상의 잣대나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을 추구해 나가는 주인공 싱클레어와 그의 친구이자 지배자 아빠이자 멘토이자 악마의 역할을 담당하는 데미안의 성장 이야기이다. 

#아프락사스 

르네 마그리뜨, 대가족(la gran familia)


아프락사스는 신이자 악마이며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여신이자 창부이며 자기 자신이자 타인인 그런 존재이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에게 '허락된'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어렴풋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아벨의 세계가 아닌 카인의 세계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세상은 도덕적이고 굉장히 선하고 사회적인 규범들로 이루어져 있다. 데미안은 그것이 반쪽짜리 세상이며 진정으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신이자 악마인 아프락사스와 같은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기독교의 신은 악마와 철저히 분리되어있는 것에 반하여(이것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구약의 신은 매우 엄한 신이라면 또한 신약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굉장히 선한 신이기 때문이다) 아프락사스는 신이자 악마이다. 

# 카인과 아벨 

 

누가 만들어낸 이미지인가?


신학교에서 곧이곧대로 알려주는 대로 수업을 듣고 있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카인은 굉장히 개성 있고 강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를 두려워한 평범한 사람들이 그와 그의 종족에게 표지를 남겼다고 말이다(연금술사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표지부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태도). 
 이 이야기를 들은 뒤로 싱클레어는 두 번 다시 아벨의 세계에만 있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릴 때는 아버지와 어머니 따듯함 성탄절과 같은 것으로 상징되는 그 세계로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었고 기꺼이 자신도 그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춘기가 다가오고 온갖 충동들이 그를 들이닥쳤을 때 그런 유년기의 따듯함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고독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싱클레어였다. 

# 피스토리우스,오르간 연주자이자 두 번째 멘토

 

 

음악에 도덕은 없다


데미안 이후로 싱클레어에게는 두 번째 멘토가 찾아온다. 그는 강렬한 갈색 눈을 가진 오르간 연주자이다. 어느 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싱클레어의 귀를 붙잡는 연주가 들려온다. 성당 밖에서 들려오던 노래를 듣는 싱클레어는 알 수 없는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그 오르간 연주자를 따라 술집이 들어갔고, 거기서 오래된 친구에게 말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이야기한다. 아프락사스부터 자신에게 나타나는 영상들,항상 꾸는 똑같은 꿈 말이다(이것도 연금술사의 요소와 같다. 단순한 우연일까?) 
 그 이후로 친구가 된 둘은 자주 만나며 이야기를 
나눈다. 음악은 도덕이 개입하지 않아서 좋다는 이야기와 우리는 단지 자기 자신이 이끄는 길을 갈 뿐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사명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길의 보이는 결과물로 사람들이 부르는 예술가 예언가 범죄자 등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등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데미안에게서 또는 그가 의지했던 어떤 것들에게 느꼈던 것처럼 싱클레어는 그에게도 떠나가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그래서 그는 그에게 말한다.  

 "그런 얘기 말고 새로운 얘기를 해주세요. 이야기에서 곰팡내가 납니다. 진짜 꾸었던 꿈 같은 거 말이에요." 

라고, 그것은 그의 가장 큰 본질이자 약점을 찌르는 말이었다. 즉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종교 아프락사스는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피스토리우스는 거기에 의지하고 집착할 수 밖에 없었다. 즉 남에게 자신의 길을 가고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 수는 있지만 정작 자신의 꿈은 이야기 못 하는 상황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조금만 더 괜찮았다면 싱클레어에게 미소도 지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웃지 못하고 단 어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싱클레어는 생각한다. 차라리 욕을 하고 윽박질렀더라면 마음이 더 편했을 텐데 하지만 그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그렇게 또다시 싱클레어는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


#에바 부인

여성이자 남성이자 여신이자 창녀이자 그의 꿈이었던


에바 부인은 데미안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싱클레어의 꿈속에 계속하여 등장했던 꿈이자 여신이자 어머니이자 애인이었다. 이 부분이 이해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가 어머니이자 아버지인 그런 중성의 혼합된 성격의 어떤 형상에 대한 꿈을 꾼 지는 참으로 오래된 일이고, 그 전에 단 한 번도 에바 부인을 본 적이 없다(데미안의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꿈에 나온 존재가 현실에 또한 존재한다니? 단지 싱클레어의 바램이자 환상이자 착각일까? 그러기엔 그가 꿈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완전히 합치한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목표의 종착점에 도달했다고 느낀다. 그만큼 그에게 그녀는 이상이자 최종 목적지라고 부를 만큼 완벽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에바 부인의 입술과 품을 상상하고 관능적이자 환상적인 그녀의 모습을 계속해서 상상하고 내면화 시키려 한다. 단순하게 에로스적으로 좋아하는 그 마음을 스스로 속인 것은 아닐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고 솔직하게 사는 것이 싱클레어의 삶의 목적이자 이 책의 주제가 아닌가?). 데미안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관계없는 여인이었다면 이렇게 멀리서 동경하는 듯한 태도를 계속해서 취했을까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싱클레어는 그녀를 열망하고 품에 안고 싶어 하고 그러면서도 두려워하고 고귀해 하는 그런 혼합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프란츠 크로머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바랬던 것이 결코 전쟁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국면의 전환으로써 그들은 긍정적으로 전쟁을 받아들인다. 물론 다른 이들처럼 누군가가 주입한 맹목적인 목적을 위한 전쟁이 아닌 그들이 가는 길에 현실의 상황이 겹쳤을 뿐이다. 싱클레어는 전쟁을 통해 자신이 인간을 과소평가했으며, 그들도 무언가를 위해 나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는 전쟁 중에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무의식과 의식을 왔다 갔다 하는 중에 그리고 병상에 실려 다니는 중에 데미안을 느끼고 그가 자신과 같이 누워있음을 알아챈다.



데미안은 마지막에 '프란츠 크로머를 기억하느냐'라고 말한다. 싱클레어가 처음으로 세상의 고통을 느끼게 해준 첫 번째 인물이자 데미안과 그를 이어준 인물이다.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를 통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 범죄라고 느끼는 행동을 하게 하고 아벨의 세상이 아닌 것을 인지하게 해준 인간이다. 그리고 그것을 데미안이 단번에 벗겨내 주었다. 유년시절의 빚이자 그들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프란츠 크로머인 것이다.



그들은 다른 이야기는 다 해도 프란츠크로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죽는다. 



하지만 싱클레어의 마음속 깊은 곳에 이미 둘은 하나가 되어있고 데미안이 그이고 그가 데미안인 , 옮긴 이가 말하듯이 바깥세상에는 데미안이 없지만 내면 세상에는 존재하는 상태가 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1차 세계대전 



마지막의 전쟁은 1차 세계대전이라고 한다. 완전한 경제논리와 정치적 탐욕으로 작동하는 그 전쟁이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추구하는 자존성/ 진정으로 자신이 되는 길과 어떻게 닿을 수 있는지 아직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옮긴 이가 짧게 쓴 대로 이러한 전쟁이 자신을 잃고 물질화되어있을 때 일어나기 쉬우며, 그런 것을 배제하고 자신을 찾아가야 한다는 교훈이 그때 당시 젊은이들의 마음을 울렸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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