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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라는 가능성, 김광현

10개의 책 중 가장 첫번째인 책이다.

 

 건축에 대하여 조금더 진지하고 관심을 가져보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책에 의하면 건축의장, 즉 건축설계이론을 다룬 책이 한국에는 없어 10권의 책으로 펴냈다고 말했다.

 

'건축이라는 가능성' 의 제목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정말 잘지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건축은 정말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예술이다. 그러므로 본질에 더욱더 집중해야한다. 라는 말이 제목에 잘 담겨있다. 그리고 이 것이 첫번째 주제일 수 밖에 없다. 건축에 대하여 하나하나 뜯어보기 전에 , 건축, 건축가가 가져야하는 생각과 태도는 무엇일까 ? 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기 때문이다. 

 

건축가, 또는 건축가를 꿈꾸는 수많은 직능인들이 던지는 질문인 '건축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김광현 교수님만의 대답이자 생각이다. 그가 계속해서 주장해온 공동성(commonness)는 이번에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내가 이해한 공동성은, 건축이 지어지기 이전부터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딱 이해하고 받아들여지는 그 무엇이며, 그 무엇을 건축이 담아내야 한다는 것. Common sense적 건축이랄까..? 그리고 그러한 본질을 사람들이 잊고 있거나 잘 모르고 있다면 건축가는 그것을 일 깨워주어야하며 그런 충분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업 중에 하나가 건축이라는 것.

 

 

르꼬르뷔제 미스 반데로에 vs 루이스 칸

 

그는 르꼬르뷔제와 미스반데로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루이스 칸을 좋아한다. 르꼬르뷔제와 루이스 칸이 수도원에 대해 갖는 태도를 예를 들면서 설명한다. 르꼬르뷔제의 라뚜레뜨 수도원(la tourette monastery)을 보자. 수도원을 살펴보기전에 '회랑'을 알아야한다. 수도원에서의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여기서 걸으며 기도를 하며 묵상하는 공간이자, 전통적으로도 중요한 공간이라고 수도사들이 배워온 공간이다. 

그래서 도미니크 수도원장 또한 르꼬르뷔제에게 이 회랑이라는 공간이 매우 중요한 공간이니 이 회랑을 중심으로 수도사들이 자는 공간, 기도하는 공간 등을 아우르게 배치해달라고 요청한다.

 

유럽의 수도원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회랑(cluster)의 예

 

르꼬르뷔제의 라뚜레뜨에서 회랑(courtyard,cluster) 사진. 회랑 처럼보이는가?

하지만 르꼬르뷔제의 회랑은 수도사들이 복도를 따라 바라만 보아야한다(벽으로 다 막혀있고 1층 레벨에서 느끼기가 힘들다). 그리고 중앙에 분절된 매스를 위해 십자 모양의 통로를 두었다. 회랑의 모양만 갖추었지 회랑의 분위기와 그 가지는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공간이라고, 책에서 말한다. 

 

많은 책이 그러하듯 삽화가 많지 않아 동영상을 먼저 보고 이 비평을 보았는대 정말 맞는 말이다. 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그리고 르꼬르뷔제는 자기가 계속 주장해온 자유로운 평면/입면, 옥상으로의 램프 등 자신의 건축이 구축해놓은 프로토타입에 단지 수도원을 입힌 것 뿐이다. 라는 말에 동의한다. 나쁘게 말하면 자기가 평소에 하던거 프로그램만 바꿔서 넣었더니, 사용자들은 싫어하는 그런 상황이다.

 

그렇담 루이스 칸은 잘했을까?

도미니칸 수도원이다.

Dominican sisters convent 평면도(구글링을 꼭 영어로 해야한다. 자료가 없다.)

 

기존 회랑들이 대부분 사각형의 모양을 가졌던 것에 반하여 사각형들을 다양하게 틀어 냄으로서 다양한 모양의 회랑이 만들어 졌다. 그리고 주변부로는 수도사들이 자는 곳으로 추정되는 것이 네모난 틀을 잡으면서 배치되어 있고, 나머지 기도하는 장소나, 식사하는 곳 등은 비슷한 크기로 만들어져있다. 책에서는 '다중심성', 즉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는 곳에 머무르면 식사하는 곳이 중심이 되고, 기도를 하는 곳에 있으면 그곳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르꼬르뷔제를 비난하던 것보다는 확 와닿지는 않지만 비슷한 비례에 다양하게 틀어져 엮여 있는 듯한 평면을 보니 그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와닿았다. 

 

이 사례에서와 같이 책의 거의 모든 논조는 건축은 주택이며, 지어지기 이전에 그 것의 본질을 생각해야 하며, 그곳에서 생활해야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서 그 주변의 사람들, 그 곳에 생활하지는 않지만 영향을 받을 사람들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스 반데로에의 판스워즈 주택도 같은 논조이다.

미스 반데로에 판스워즈 주택_ 살기 위한 주택이 아니다.

사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자신의 예술혼을 건축에 담으면 이렇게 된다. 판스워즈는 주택이라기 보다는 판스워즈 예술작품이라고 불러야한다. 저 곳에는 사람이 없다. 건축주인 판스워즈도 살아보려 했으나 곳곳에서 새는 물(왜 이때 당시에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지 모르겠다), 주위를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인하여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미스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보여주었던 벽이 아닌 공간 자체를 어떠한 용도로 구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곳의 부지를 보더니, 자연이 너무나 아름다워 벽이나 다른 것들로 가려지는 것이 아닌 완전히 통하는 주택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건축주에게 말했다고 한다. 르꼬르뷔제와 같은 마인드다. 자신의 건축적 프로토타입/이상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시설'에 대한 해석이 온 경우이다.

 

역작으로 남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작품이지만, 살지는 못한다. 유리방에 산다고 생각해보아라, 분명히 미스도 알았을 것이다.  

 

사실 어떠한 이론이라는 것이 과거의 뛰어난 이론을 비판하고 부정하면서 보통 등장한다. 르꼬르뷔제 미스반데로에 와 같이 기능주의 국제주의 라는 근대적인 사고방식은 그때 당시에는 좋게 받아 들여 졌고, 그에 대한 부정적인 결과을 보면서 루이스 칸도 건축의 본질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한다는 현대 건축의 시발점이 되는 사고방식을 들고 나온 것이다. 

루이스칸은 70년대에 사망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도 이러한 사고방식이 옳은가? 라는 질문이 들었다. 

 

물론 중요한 본질,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고 방식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건축에서 예술 작품을 하고 싶다면 돈많고 나를 전적으로 믿는 건축주를 만나거나, 자기가 돈이 많으면 된다. 자기 집 하나를 갖는게 소원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사람에게 판스워즈를 지어주었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을 어필하지 않으면 매우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 건축이다. 정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하는 심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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