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구조
책의 제목인 사건과 구조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도서관의 열람실에서의 공간 구조와 일어나는 사건(책을 찾아본다든지 앉아서 읽는다든지 하는 사건들)은 어느정도 가깝다.여기서 가깝다라는 것은 예측가능하고 관련이 매우 깊다는 뜻이다. 하지만 도서관의 로비는 공간구조와 사건의 연관성을 엮을 수가 없다. 이럴 때를 사건과 구조가 떨어져있다,멀다 라고 책에서 표현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건과 구조는 멀까 가까울까? 건축가가 어떤 공간에서 어떠한 행태가 일어나길 기대하거나 일어날 것이라고 어느정도 확신하면서 설계를 하면 정말 그 공간에서는 그 행태가 일어나는가? 또는 그럴 것이라고 믿는가? 아니면 전혀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설계를 해나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이 따라온다. 이러한 고민들을 50~60년대 건축가들도 했으며 각각의 답을 내놓고 있다.
도시에서의 기본 전제
도시에서의 기본 전제는 두가지다.
1. 도시는 인간과 건축물 건축 어떤 제도보다도 훨씬 오래 지속된다. 거의 영속적이다(폼페이 이후로 망한 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2.도시에는 건물과 구조물 외에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수많은 사람과 사건 , 사물 , 제도들이 혼재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 건축가 개인 또는 건축 그룹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리고 50~60년대 건축가들 르꼬르뷔제 부터 team X , 아키줌, 슈퍼스튜디오 등의 건축가들이 어떤 것을 주장하였는지 이 책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저렇게 영속적이고 거의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는 '도시' 라는 것에 건축가 또는 건축가그룹이 무언가를 주장 할 수 있는가? 그렇다 라고 대답한 것이 르꼬르뷔제, 그로피우스를 비롯한 CIAM의 구세대 건축가들이었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team X, 요나 프리드만 등의 신세대 건축가들이다.
두개의 상반된 그룹들이 추구하는 바는 사실 같다. 인본주의적 이상주의. 즉 도시를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향이 매우 다를 뿐이다.
르꼬르뷔제의 브아젱 계획,1925
거대한 수직 블럭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함으로서 르꼬르뷔제가 추구하려 했던 것은 녹지의 회복, 그리고 인본주의이다. 르꼬르뷔제의 도시계획은 300만을 위한 도시 > 브아쟁 계획 >빛나는 도시 순으로 정리되어 발표된다.
그 중에 브아쟁 계획은 브아쟁 사의 후원으로 파리를 실제 대지 삼아 계획되었다.
" 300만을 위한 도시 계획안을 보면 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고 도시의 중심에는 60층 높이에 10,000명에서 최고 50,000명까지 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소위 데카르트의 마천루 스물 네동이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으며 그 인근으로는 10층 정도의 주거 건물들이 충분한 녹지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배치된다. 그리고 서쪽영역에는 박물관, 시청사 등의 규모가 큰 공공 건물이 들어서고 그 바깥쪽으로 후일의 논리적인 도시 확장을 위한 예정지로서 영국식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동쪽에는 교통의 거점과 산업 시설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린벨트로 둘러싸여 있는 복합적인 중심부가 60만 인구를 수용하고 그린벨트 외곽의 전원 도시들이 200만 이상의 인구를 수용한다는 것이 기본안이다."
82~83P
이렇게 함으로서, 도시의 혼잡을 해소하고 밀도를 높이며 교통수단을 확충하고 조경공간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이런 환경을 통하여 '순수한 즐거움(Essential joy)'를 보장하고자 하였고, 열린 도시로의 성격을 더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50~60년대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체주의가 가져온 폐혜를 보고 겪은 세대들은 어떻게 받아 들일 것 같은가? 건축가가 도시 전체를 컨트롤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일을 어느정도 예측가능하고 조절할 수 있다. 라는 생각으로 전개되기에 충분한 사고 방식이기에 CIAM의 젊은 건축가들은 르꼬르뷔제의 생각에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거대한 스케일이 20세기 후반의 도시론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용되는 역설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 50~60년대의 거대구조와 알제의 도시 계획을 합께 놓고보면 우리는 소위 젊은 세대들이 르 꼬르뷔제를 공격했던 진짜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난감해질 뿐이다.
건축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느리다. 그리고 어떤 사고방식이든 기본 물화를 전제조건으로 한다(건축이라는 가능성,김광현). 하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뉴바빌론 ,플러그인 시티는 어디 공상과학에서나 나올법한 전제조건과 환경들을 설정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당연히 물화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건축계에서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보면 크게 두가지로, 그 자체의 완성도(아무리 이상한 사고고 말이 안되도 그것이 미적으로 훌륭하다면 어느정도 수용되는 경향은 지금도 있다)와 그 생각과 논리적 구축자체가 다음 세대의 건축과 도시의 물화에 도움/영감을 주는 경우이다.
이제 세계=도시 농촌=도시 가 되는 상황에서 도시의 복잡성을 핑계로 건축가의 개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그 나름의 답을 해나갔던 50~60년대 다양한 건축가들의 생각과 작품들을 읽어 낼 수가 있다.
도시관련 재밋는 내용 첨부
http://newspeppermint.com/2013/10/09/10urbandiagramth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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