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원불능성
돔이노와 미로를 비교해보자 돔이노는 기둥, 슬라브, 계단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각각 수직 수평 수직 이동들로 치환할 수 있다. 이렇게 어떤 전체를 최소 개체로 부수어 전체를 파악하는 과정을 환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로는 그것 자체로 하나의 개체이자 전체이다. 만들어지는 과정도 굉장히 간단하다. 요소라고 할 만한 것들이 마땅하지 않다.
이 환원불능 하다는 성질이 미로라는 것을 파악할 때 무슨 의미를 가질까?
#복수의 선택성
미로를 경험하는 사람은 비슷하게 반복되는 공간들을 선택하면서 미로를 경험한다. 수많은 동선의 알트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것은 사후 구축과 닿는 이야기이며 미로의 생성과정과 결과의 간단함과 비교하여 경험 측면에서 매우 복잡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정된 무한성
미로의 생성과정은 매우 간단하다. 단선 미로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만들 수 있고 결절점이 있는 미로 또한 그 결과물의 복잡함과 비교했을 때 매우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결절점 미로에 대해 더 설명하자면, 먼저 정사각형 그리드 중앙을 지나는 통로를 그린다. 그 다음 막다른 길/순환하는 길을 그린다. 이 과정에 따라서 미로의 난이도가 올라가게 된다. 막다른길을 무한히 돌릴 수도 있고, 막다른 길 안에서도 선택 가지 수를 추가하는 등 어렵게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 통로를 주위로 모든 선들을 그어나가면 미로를 만들 수 있다.
미로에서의 경험은 몇 개의 수직 벽을 세워 만든 공간에서 느끼는 경험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무한하다. 특히 미로 경험자가 어떤 표시를 하거나 내부 참조요소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극대화된다.
#사후구축
그래서 보통 건축가들은 만들어 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구체적인 결과물을 예상하고 상상한다. 하지만 미로은 미로를 만드는 사람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으며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할지 조작하거나 예상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90도로 돌리거나 뒤집어만 놓아도 새로운 미로가 탄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미로의 공간은 이용자의 사후구축 잠재성이 극대화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알도 반 아이크 아른헴 옥외 전시장
미로가 건물 단위에서 작동하는 거의 유일한 작품이다. 물리적 특징은 옥외전시의 성질을 도와주는 반사광 천장과 남북 방향으로 선 벽들이다. 벽들은 문 또는 창문의 역할을 하는 보이드들로 뚫려있다. 이 미로적 공간은 미로의 성질과 미로가 아닌 성질로 나눠볼 수가 있다. 미로적 성질은 이용자가 이곳을 어떠한 정해진 방법으로 경험하지 않으며 이용자마다 서로가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는 입구도 출구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사용자가 시작하느냐에 따라서도 바뀌고, 미로처럼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서도 경험하는 것이 바뀐다. 그리고 미로가 가진 성질인 한정된 무한성을 가진다. 벽 몇 개로 이루어진 공간치고 굉장히 풍부한 경험을 제공한다.
미로적이지 않은 성질은, 앞서 출구와 입구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사실과 이곳에서 길을 찾기 위한 생각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미로를 떠도는 사람은 고전적으로 출구로 나가고 싶어한다). 그리고 전시품이라는 미로 안의 참조점이 이미 존재한다. 그래서 이 장소는 사람들이 출구를 찾기위해 분투하는 장소가 아닌 전시 물품들에게 이끌리며 움직이는 표류의 공간이다. 밑에서 보게될 뉴바빌론이 추구하는 바와 매우 비슷하다.
미로적 공간을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알도의 작업이 오히려 더욱 미로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 이 작업들은 실제적으로 새로운 건축공간유형으로서 미로를 '사용'하기 위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뉴바빌론의 가능성과 한계
콘스탄틴의 뉴바빌론은 표류(derive)하는 인간이 일상을 향유하는 공간이다. 다른 건축가들처럼 미로를 자신의 작품을 사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용도나, 또는 형태의 유사성, 수사적인 첨부 수준으로 사용하는데 반하여 뉴바빌론에서는 끊임없이 미로를 공간적 유형으로 적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호모 루덴스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받아주는 움직이는 미로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을 정확히 미로 공간으로 말하기에는 2가지 정도의 한계가 존재한다. 첫째로, 이 움직인다는 성질에 의하여 이것이 건축적 물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준다. 움직인다는 성질로 인하여 원래 미로가 가지는 목적성, 길을 찾아 반드시 나가야 한다는 전제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반드시 움직여야만 그 목적성이 없어지느냐?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공간은 ‘물렁물렁한 공간’이 되어 버려 건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심이 생기게 된다.
둘째로, 누가 이 공간을 움직이게 하느냐는 것에 뚜렷한 답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공간을 경험하는 주체의 사람인지, 아니면 신의 시스템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공간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은 알 수가 있다.
물리적으로 뉴바빌론을 살펴보면 어떤 가구도 없고, 계단을 대체할 사다리가 보인다. 사다리는 수직으로 세울 수도 있고, 수평으로 눕혀 그 위를 지나갈 수도 있으니 뉴바빌론에 아주 적절한 이동도구라고 할 수 있겠다.
# 크노소스 궁전
크노소스의 미궁은 정말 미궁으로 설계된 것은 아니지만 그 건물이 가지고 있는 성질 때문에 미로라는 이름이 뒤에 붙게 되었다. 이 궁전은 공간의 물적 요소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 즉, 건물이 물리적인 요소들로 꽉 차있다는 것, 보이드가 별로 작동하지 않거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기둥의 간격이 매우 좁다. 이것은 그 당시 아치를 사용하지 않고 돌로 된 평인방을 사용한 것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래서 기둥들은 벽과 같이 작동하여 시야를 가리고 동선을 방해한다. 그리고 옛날 도시조직과 같이 비슷한 패턴이 계속하여 반복된다. 즉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자기 참조점이 될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계속하여 반복되는 공간을 반복하여 경험하는 것, 그것은 미로가 줄 수 있는 공간적 경험이다. 그래서 들뢰즈는 이렇게 말했다. ‘사막과 미로는 근본적으로 같다.’
그리고 스케일이 매우 크다. 렘 콜하스가 말한 것처럼 어떤 특정한 스케일 이상의 것은 그 스케일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가 경험하는 미로적 특성이 배가 된다. 그리고 미로는 폐쇄되어 있다. 폐쇄된 내부공간은 사용자에게 정신적 압박감을 준다. 바깥에서 절대 힌트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과 균질한 인공광으로만 이루어진 어두운 공간에서 이러한 답을 얻어야 하는 사실은 온전한 추론과 판단이 작용할 수 없도록 만든다.
#3차원 미로
3차원 미로는 책의 저자가 직접 작업한 것으로 기존의 xy 이동방향에 z 방향의 이동을 더 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무중력의 미로 활동이다. 작업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정육면체의 입방체 125개를 5*5*5로 쌓은 형태이며 전체 모양은 다시 정육면체이다. 이것은 나중에 어느 방향으로 돌려도 여전히 미로로서 작동하면서도 전체적인 형태와 틀이 바뀌지 않는 효과를 주게 된다. 이 3차원 미로는 건축가들이 평면도의 위아래를 참조하듯이 상상을 하며 문제를 풀어야 하며 2차원 미로에서 문제의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우리가 미로 문제 풀듯이 손으로 따라가며 문제를 푸는 식의 행위가 일단 되지 않는다(2d 인쇄된 종이 위에서 풀 때). 하지만 vr/ar이 발달하는 시대에 이 3d 미로를 다시 보면 결국 2d 미로와 같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종이 위에서 풀 때와 같이 트레이싱을 못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3d 미로 작업을 끝내고 미로를 돌려보면 수평 수직 비율이 굉장히 편파적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수평면을 기준으로 수직면을 올리는 식으로(평소에 건물을 올리는 방식으로)작업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90도로 돌리면 바닥에 구멍들이 훨씬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균형을 정량적 계산을 통하여 2차 수정하면 어느 방향으로 돌려도 균질한 3d 미로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미로 제작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이것은 더욱이 사용자의 사후 구축에 의한 경험이 더 중요해짐을 이야기한다.
#직선다이어그램
미로의 복잡성과 반대로 동선을 표현해보는 직선다이어그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생각이 들게 한다. 일단 동선으로 생각한다면 단순하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분석한 미로가 단선 미로라서 더욱 그런 것일 수 있지만, 이용자가 경험하는 것에 비해서는 매우 단순한 구조이다.
#mvrdv 베를린 카펫 & 델프트 집합 주거
알도 반 아이크부터 헤르만 헤르츠버그까지 네덜란드 구조주의자들이 미로라는 공간형식에 집중하고 난 뒤에, 뒤이어 MVRDV가 베를린 카펫과 델프트 집합 주거에서 미로적인 형태의 공간과 결과론적으로 미로적으로 되어버린 건축을 들고나온다. 두 작품 다 그 의도가 맨 처음부터 미로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겠다라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예측 불가능성과 무한한 경험성을 보면 미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link - 미학오디세이 미로편
미학오디세이의 미로 편을 보면, 현재 나와 있는 미로는 크게 3가지로 말할 수 있다. 1. 단선미로(운명적 종교적의미가 강함) 2. 다선미로(근대의 선택가능성과 분화) 3. 리좀미로(현대의 미로,시작도 끝도 정해지지 않고 우주처럼 퍼지는 미로)
이다. 살펴보면 각 시대를 대표하는 성향을 미로가 담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사회적 이슈와 성격이 미로에 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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