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의란 무엇인가_마이클 샌델

 

 

#목차

 

1.옳은 일 하기

-행복,자유,미덕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구제금융을 둘러싼 분노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철로를 이탈한 전차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도덕적 딜레마

 

2.최대 행복 원칙_공리주의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

-반박 1: 개인의 권리

-반박 2: 가치를 나타내는 단일통화

-대가를 받고 치르는 고통

-존 스튜어드 밀

 

3.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_자유지상주의

-최소국가

-자유시장 철학

-마이클 조던의 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4.대리인 고용하기_시장과 도덕

-징집과 고용, 무엇이 옳은가?

-자원군 옹호

-대가를 받는 임신

-대리 출산 계약과 정의

-외주 임신

 

5.중요한 것은 동기다_이마누엘 칸트

-칸트의 권리 옹호

-행복 극대화의 문제점

-자유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물

-도덕이란 무엇인가? 동기를 찾아라

-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인가?

-정언 명령 대 가언 명령

-도덕과 자유

-칸트에 대한 의문

-섹스, 거짓말, 그리고 정치

 

6.평등 옹호_존 롤스

-계약의 도덕적 한계

-합의만으로는 부족할 때 : 야가 카드와 물이 새는 변기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 때 : 흄의 집과 유리닦이

-이익인가, 합의인가? 샘의 자동차 수리

-완벽한 계약 상상하기

-정의의 원칙 두 가지

-도덕적 임의성 배제 논리

-평등주의 악몽

-도덕적 자격 거부하기

-삶은 불공평한가?

 

7.소수집단우대정책 논쟁

-시험 격차 바로잡기

-과거의 잘못 보상하기

-다양성 증대

-인종별 우대정책은 권리를 침해하는가?

-인종분리정책과 반유대적 할당제

-백인 우대 정책?

-정의는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

-대학이 경매로 입학생을 뽑아도 될까?

 

8.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_아리스토텔레스

-정의,텔로스,영광

-목적론적 사고 : 테니스 코트와 곰돌이 푸

-대학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행동으로 터득하기

-정치와 좋은 삶

 

9.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_충직 딜레마

-사죄와 손해배상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

-도덕적 개인주의

-정부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정의와 자유

-공동체의 요구

-이야기하는 존재

-합의를 넘어서는 의무

-연대와 소속

-애국심이 미덕인가?

-연대는 우리 사람만 챙기는 편애인가?

-충직이 보편적 도덕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정의와 좋은 삶

 

10.정의와 공동선

-중립을 지키려는 열망

-낙태와 줄기세포 논란

-동성혼

-정의와 좋은 삶

-공동선의 정치

 

#개요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쟁점들(상이군인훈장,구제금융 철로를 이탈한 열차 등)은 우리의 현실과 절대 멀지 않다. 가까운 예로 최근 마스크 사태에 따른 시민들의 분노는 책의 사례로 나오는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정의와 도덕의 문제가 우리 삶에 매우 밀접하며 우리의 중요한 판단이나 정책 등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정의에 대한 태도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목차에 나오는 [행복, 자유, 미덕]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개의 키워드가 어떻게 서로를 견제하고 상호보완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으면 더욱 쉽고 재밌게 읽을 수가 있다.

 

#행복, 자유, 미덕

 

행복은 목차 3에 나오는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를 말한다. 얼핏 보기에 가장 강력하고 간단한 원칙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도덕 과학이라고 할 만큼 정량적인 판단을 추구한다.

자유는 자유지상주의 또는 자유방임주의를 의미한다. 개인의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정부가 어떤 공동선이나 개인에게 부과하는 의무를 거부하며, 최소정부를 주장한다. 정부는 립을 유지하여 최대한 개인의 선택하에 사회가 움직이도록 권장하는 방향이다. 현재 사회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유형이다.

미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도덕 정치를 말한다. 어떤 것에 담겨있는 목적에 주목한다. 그 목적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정치에 종교와 도덕을 배제하자는 자유주의자들의 이야기와 반대되는 내용이 많다. 정치에서 중립은 있을 수 없으며, 개인과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적극적인 법 제정과 정부 개입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 철로를 이탈한 전차

 

당신이 운전수인 경우, 또는 당신이 레버를 당기는 사람인 경우. 차이가 뭔지 설명해보라.
당신은 밀것인가?

가정을 해보자. 당신은 전차운전사다. 지금 브레이크가 고장났고, 두 갈래의 철로 길에는 사람 5명과 사람 1명이 각 길에 서 있다. 당신이라면 어느 길로 전차를 이끌 것인가? 보통 1명이 있는 길로 간다고 말한다. 그럼 상황을 바꿔보자. 당신은 어느 언덕 위에 서 있다. 그런데 바로 밑에 전차가 지나가고, 철로 위에는 5명의 사람이 서 있다. 당신은 그 상황을 인지하였다. 그런데 바로 앞에 덩치가 산만한 사람 한 명이 서 있다. 그 사람을 밀어서 철로 위로 떨어뜨리면 그 상황을 막을 수 있는 (100% 막을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때는 선뜻 말을 하기가 힘들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 사람을 밀어서 5명을 구한단 말인가? 아니 아까와 상황이 전혀 다르지 않은데(1명 vs 5명 아닌가?) 왜 우리는 방금 주저했을까?

 

1명보다는 5명을 구하는 게 났다는 공리주의적 판단과 커다란 한 명의 사람의 권리를 내가 침해할 수는 없다는 자유주의적 권리가 충돌한 것이다.

 

이야기를 조금만 더 바꾸어 생각해보자. 이번에는 1명의 어린아이와 5명의 노인이 철로 위에 각각 서 있다. 당신은 어느 쪽으로 전차를 이끌 것인가..?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 ‘어린아이는 미래의 희망이다.’ 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는가? ‘인간의 생명 존엄은 모두 동일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어떤 생각이 당신의 가치관과 맞는지에 따라 정반대의 행동을 결정했을 확률이 높다. 이번에는 어떤 사항에 대한 목적론/어떤 가치 판단이 행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정치

당신이 자유방임주의자라면 스크린쿼터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 정치를 살펴보면, 최고선,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한다. 여기서 목적이란 말이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만약 최고의 플루트가 있다면 그것을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잘 연주하는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결국 좋은 연주로 돌아와 우리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대학은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대학은 연구 및 시민들의 공익을 위한 기관이다. 이러한 정의는 누가 하는가, 사회가 정해서 대학에 내려주는가? 아니면 학장의 개인의 선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가? 그것 중 어떤 것이 더 큰 힘을 가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좋은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왜일까? 그의 프로세스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정치의 목적은 좋은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습관/교육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 교육/내재화된 문화를 만드는 것은 ‘법’이다. 법을 만드는 것은 정치이다. 또한 정치 과정은 개인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언어가 다른 동물들처럼 고통과 쾌락을 표현하는 것만이 아닌 다른 특수한 가치를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 그 가치를 위해 사용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모여야, 정치가 작동해야 한다. 혼자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동물 아니면 신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권리와 목적론적 도덕

종교적 근본주의는 어느 종교나 나타난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인간의 최고의 정의를 자유라고 말한다. 자유는 그 어떤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태도에서 얻을 수 있다. 즉, 개개인마다 자신의 정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중립적인 분위기 태도에서 얻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텔로스, 즉 목적은 위험한 구석이 있다. 대체 누가 무엇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느냐는 것이다. 특히 국가가 종교와 함께 목적을 지정하면, 여자는 반드시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써야 하며, 하루에 5번은 절을 해야 하며, 카스트 제도 등 근본주의적 사고로 빠질 수 있다.

 

# 지금 현재의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에 사죄를 해야 하는가?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은 1945년 이래로 계속해서 사죄와 배상을 해왔다. 정확히 집어보면 사실 지금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배상을 하는 독일인들 중 그 누구도 유대인을 학살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스스로 그 짐을 짊어지고 사죄를 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일부 정치인이 사과했을 때를 제외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잘못된 것일까? 현재의 일본인들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가?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내가 우리의 조상들을 대신하여 사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짓을 자행하지도 않아서 사과할 권리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사과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측의 입장 중에는 ‘서사적 인간’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 인간은 어떤 이야기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즉, 지금 현재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더 나아가 미래까지 어떤 하나의 서사로 나라는 존재가 묶여있다는, 같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어떤 기술이나 문화 등도 사실 자유주의적 입장에서는 원칙적으로 누릴 권리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 자연적 의무/ 자발적 의무 / 연대적 의무

자발적 의무 : 이미 누군가가 합의해놓은 사항, 과거의 상황때문에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대를 간다.누군가는 나라를 위한다며, 누군가는 정말 억지로. 

자연적 의무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기반으로 사회적 계약 없이 작동하는 의무들을 말한다. 칼로 서로를 찌르지 않는다,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아이들을 잘 돌보아야 한다 등등 어느 정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얘기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성질의 의무를 말한다.

 

자발적 의무는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작동하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의무를 말한다. 롤스는 인간에게 자연적 의무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사회적 합의에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지켜야 하는 그런 의무를 말한다. 사회적 합의는 보통 법으로 정해져 있고, 어떤 집단의 규칙으로 구성된다. 군대를 가고 싶어서 갔는가?

 

연대적 의무는 성격을 조금 달리한다. 특수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것은 자발적 의무와 동일하지만, 우리 마음속 어떠한 감정에 의해서 작동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다. 가족에 대한 의무, 부모님 부양 의무, 애국심 등이 이러한 의무에 속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 마음으로 군대를 지원하여 간 경우도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 정치와 좋은 삶의 관계

 

 

정치에는 정말 중립과 선택의 존중만 있으면 될까,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립과 권리를 존중한다는 그 태도만으로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 우리가 처한 많은 문제는 그렇게 무 자르듯 쉽게 잘리지 않는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와 개인의 권리와 정치적 중립을 중시하는 칸트의 도덕률과 존 롤스의 정치사상을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목적론적 정치, 도덕 정치를 살펴보았다. 저자는 마지막 도덕이 논의될 수 있는 정치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 정의와 권리는 도덕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자유주의자들은 선택적 권리를 주장한다. 개인의 가치관이나 선택이 최고의 가치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낙태와 배아줄기세포

 

직접적인 이미지가 너무 끔찍하여 못가져오겠다.라고 마음먹었는데 반박과 중립을 위해 첨부했다. 첨예하다. 

사람들의 권리와 정치의 문제는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쉽게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도덕적 종교적 판단이 계속해서 개입하기 때문이다. 낙태를 찬성하는 자들은 그것을 법과 제도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막는 것은 부당하며,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태아도 생명이며, 그것은 종교적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것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국가가 중립적이 위치를 취하기가 매우 쉽지 않다. 오히려 그냥 방관하는 것이 중립적이지 않은 입장이 될 수 있다. 5살짜리 아기를 누군가 칼로 찢고 갈기갈기 발라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이 문제는 태아를 어디서부터 인간으로 바라볼 것인가라는 가치 정의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개인의 선택과 권리만 들이밀어 해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배아줄기세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 기술이 파슨스 병 척수 마비 등의 현대의 불치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큰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들조차 생명이라고 이야기한다. 낙태보다는 덜하지만 대체 어디까지를 태아로 우리는 볼 것이냐 하는 ‘중립’적이지 못한 논의를 피할 수가 없다.

 

###동성애와 결혼, 그리고 결혼에 부여된 영광

 

 

동성애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누군가와 함께하는 과정을 국가나 어떤 집단에 의해서 반대할 수는 없다. 그것은 공평성과 자유의 원칙에서 어긋난다고 얘기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결혼의 목적은 출산이며, 그것을 할 수 없는 동성애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종교적인 이유와 여러 부정적인 이유로 인하여 동성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국가가 동성애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3가지 정도이다.

 

1. 전통을 따라 이성혼만 인정

2. 이성혼과 동성혼 모두 인정

3. 결혼 제도에 대한 권리를 개인의 결정에 맡김 (결혼제 폐지)

 

이다. 2,3번은 비슷한 모습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사고는 완전히 다르다. 모두를 인정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모두의 이해관계를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각자 이해관계의 해결되지 않는 갈등을 계속해서 안고 가야 한다. 하지만 3번 같은 경우에는 개인의 권리로 돌렸기 때문에 앞에서의 논쟁은 더 이상 불필요하다. 일부일처일 필요도 없고, 사람과 결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뭔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이는 또 있다. 2번에는 국가의 인정, 즉 어떤 행위에 대한 영광/보상/인정이 작동한다. 공적인 인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3번에는 개인의 만족 또는 당사자들 간의 만족이 작동한다.

 

아까 태아의 정의가 낙태 문제의 핵심 쟁점이었듯이, 이 동성혼의 문제도 결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논쟁을 피하지 않는 것은 칸트와 롤스처럼 개인의 자유/중립에만 맡기지 않고 계속된 논쟁을 통해 답을 내보고자 하는, 노력을 수반한다.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