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학파 왈 "현재 이루어지는 단독적인 삶을 향유하라!"_ 개인주의
루크레티우스 왈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삶을 영위하라!" 공동체주의
까르페디엠은 실존주의자들, 그리고 오늘에 집중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많이 언급된다. 마크툽은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에도 나오는 단어로, 아랍어로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 라는 뜻이다. 겸손하고 담대하게 삶을 살아가기 위한 태도를 위한 비유로 사용되곤한다.
에피쿠로스와 앞의 루크레티우스로 대표되는 에피쿠로스 학파는 흔히들 쾌락주의자들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 반대파이자 주류인 스토아 학파에 의해 왜곡된 것이 크다. 그들이 말한 쾌락이란 육욕적인 쾌락을 뜻하는게 아닌, 인간의 기쁨과 유쾌함을 주는 모든 체험을 말한 것이다. 즉 타자와의 관계가 기쁨을 준다면 그들은 타자와의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도 에피쿠로스 학파는 교외에 공동체를 꾸리고 생활하였다. 그 곳을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라고 불렀다. 그 곳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팍스 로마나같은 제국주의 시대에도 여자들과 노예들이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장소였다는 것이다. 기존의 위계질서와 서열로 이루어진 기존 공동체들이 그들의 자유로운 사회를 비난하고 억압했던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또한 에피쿠로스가 당대의 지식인들로 모욕에 가까운 저주를 받았던 것은 플라톤으로 상징되는 당시 서양철학의 주류의 근본들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육체와 정신에 관한 사고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 사고방식은 스피노자등을 거쳐 현대까지 이어져오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과 육체의 역량이 반비례하는 것이 아닌 함께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음이 신체와 더불어 생겨나며 신체와 함께 성장하고 신체와 함께 늙어간다"
라는 에피쿠로스학파의 구절은 그들이 플라톤 철학이나 후대의 기독교 사유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 잘보여준다. 플라톤과 기독교철학은 마음과 정신은 분리되어있으며, 정신은 불멸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사유를 통해서 우리는 왜 스토아학파가 그들을 보고 '방탕하다'라고 비난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들의 사고방식에서는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은 완전히 동떨어져 함께 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포만감과 행복을 동시에 느끼듯 그것은 동시에 오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이념을 위해 그것을 무시한 것인지 아니면 더높은 가치관을 위해 그 감각을 포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은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작자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쾌락이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 자유를 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쾌락을 유심히 살펴보아야한다. 오늘날 말하는 욜로와 과연 같은 점에 있는지 말이다. 왜냐하면 그 쾌락이란 것이 결국에 인간의 불쾌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그들이 정의한 진정한 쾌락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기름진 음식, 맛있는 술 , 원나잇 등이 순간적으로는 쾌락을 주지만, 이것은 인간을 약하게 만들고 더 이상 쾌락을 누릴 수 없는 존재로까지 만들 수 있다.
스토아학파는 실패가 돌돌말린 연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연이고 그 실이 점점 풀리면서 삶이 진행되어가는 과정이다. 즉 이미 정해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 잠시잠깐들의 쾌/불쾌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전체와 우주의 질서를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필연적인 질서에 따라 정해진 일이기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일에 초연한 인간상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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