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롯
가난한 노인 산티아고가 바다에 나가 여태껏 잡아보지 못한 거대한 물고기를 잡고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의 1/3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기다리는 이야기며 1/3이 물고기가 낚싯대에 걸린 뒤의 이야기며 1/3이 그 물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과정이다. 특히 물고기가 낚싯대에 걸린 뒤와 잡은 뒤의 이야기는 고통의 서사시이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낚싯줄을 밤새 잠도 못 자고 어깨에 걸고 있어야 했으며 한 손으로는 낚싯줄을 잡고 한 손으로 날치와 정어리 등을 잡아서 먹었다. 갑자기 물고기가 빠르게 움직이기라도 하면 배 하판에 코를 박아야만 했다. 그만큼 힘이 세고 침착한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거의 4일을 잠도 못 자고 물고기와 씨름하였다. 6개의 낚싯대를 모두 끊어내고 그 물고기만을 잡기 위해 집중하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물고기는 힘이 빠지는 기색이 없었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었다. 혼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노인은 혼잣말한다. 처음에는 소년이 지금 자신과 함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크다. 외롭고 도움이 필요하지만 망망대해에 그는 혼자다. 해안을 떠나올 때 주변에 많은 배가 있었지만, 많은 신호를 따라 멀리 바다로 나온 그는 완벽히 혼자이다. 물고기는 그의 하나뿐인 적이자 하나뿐인 친구였다. 그러한 물고기를 잡고 난 뒤의 기쁨은 아주 찰나였다. 부푼 마음을 이끌고 항구로 돌아가기 위해 채비를 하였다. 그는 마지막 사투 후에 온몸이 뻐근하고 한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탈진했다. 거의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한 상태였고, 그는 청년이 아닌 노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태껏 의례 해왔듯 물고기를 배의 옆에 대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돌아가는 길에 갖가지 상어들이 물고기의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 그에게는 기력도 상어들을 처치할 무기들도 몇 개 없다. 무력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차라리 물고기를 잡지 말걸 이라는 생각도 한다. 물고기를 잡지 않았으면 이런 무력감과 절망을 경험할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결국 거대한 물고기의 뼈대만 남기고 집으로 돌아온다.
계속해서 겪는 어부로서의 난관과 힘든 사항들, 몸과 마음 모두 힘든 그 사항들을 계속해서 따라가다 보면 우울해진다. 그리고 그런 노력 끝에 얻은 성과물이 변변치 않아지는 현실 앞에 두 번째 위기가 닥쳐온다. 안 하느니만 못했다는 생각이 인간을 사로잡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해야 할 것을 해내는 노인을 보며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소년과 노인
그는 한창 잘나갔던 어부였다. 하지만 전성기는 언제나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 전성기 시절 소년이 5살이었을 때부터 그들은 함께 하였다. 하지만 소년의 부모님은 그가 더는 고기를 잘 못 잡는 것을 알고 소년을 다른 배로 옮겨버렸다.
하지만 소년이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노인에게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자고 제안을 했을 때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내 배는 더는 행운이 따라주지 않는다. 다른 배로 가려무나”
그가 더 이상 혈기왕성한 청년이 아님을, 이제는 주어진 상황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자신의 욕망보다는 소년을 생각하는 노인임을 말해준다. 그것보다 소년을 자신의 곁에 가까이 두어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별 볼 일 없는 어부인 자신을 계속해서 찾아주고 용기를 주는 그 소년을 그 소년의 마음을 잃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동안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 노인은 소년을 찾는다. 소년이 자신과 함께였다면 얼마나 더 좋았겠냐고 소리 내 말한다. 그렇게 노인인데도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계속해서 믿어준 소년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만큼 노인에게 자신을 챙겨주고 믿어주는 소년은 중요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대단하다 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제일 먼저 그게 자기 자신이면 더욱 좋다. 하지만 노인과 소년처럼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는 관계처럼 우리는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그런 점을 찾을 수 있다.
*어부
그는 어부이다. 어부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일이다. 더 실질적으로 말하면 물고기를 죽이는 것이 일이다. 그 죽인 물고기를 파는 것이 일이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서 뼈까지 씹어먹는다고 우리는 사자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어부가 물고기를 죽인다고 우리는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자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자의식은 죄의식과 거의 비슷하다. 인간은 태초에 죄를 짓고 태어났다는, 원죄를 안고 태어났다는 성경의 이야기를 굳이 빌어오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물고기가 힘이 빠져 뭍 위로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즉 서서히 죽기를 기다리는 그 과정에서 산티아고는 죄책감을 느낀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어부이고 어부는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다.
*성과가 보잘 것 없어질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앞서 요약할 때 노인이 물고기를 잡는 이야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한 이유는 그가 물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부분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물고기라는 거대한 성과를 위해 고통을 견디고 마음을 다잡던 노인은 그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자신이 잡은 거대한 물고기의 살점을 상어들이 뜯어먹는 것이다.
거대한 성과를 이루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나왔던,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먼길을 떠나왔던 노인은 다시 돌아가는 길이 멀기만하다. 돌아가는 길에는 뜨거운 낮도 있고 차갑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들이 존재한다. 그 길에 자신의 성과를 깎아먹어가는 상어들. 우리 삶의 상어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지 고민을 하게 한다.
노인은 상어들이 살점을 뜯어먹는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여러가지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하지만 결론 끝에 그가 한 행동은 '살점이 다 뜯어 먹힐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실말의 희망을 놓지 않고 저항하는 것'이었다.
*그가 다시 바다로 나아갈 수 있을까?
돛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며 그는 몇 번이고 길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5.5m 나 되는 거대한 물고기를 쇠약한 노인의 몸으로 혼자서 잡아 돌아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다에서부터 절실히 찾았던 침대. 하지만 그는 침대에 누워서 자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다. 죽음과 같은 휴식 후에 그는 정신을 차린다. 그가 그토록 찾던 소년이 자신을 돌본다. 행복하다.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냐고 묻는다. 그리고 소년에게는 머리 장식을 가지고 싶으면 가지라고 조금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큰 도전과 찰나의 기쁨, 지속되는 고통은 삶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만큼 팽배하다. 그냥 삶 자체가 고통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만연하다.
같이 이야기를 듣던 (오디오 북으로 책을 들었다) 엄마는 “왜 청년이 아니고 노인을 주인공으로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예리한 질문이다. 노인임에도 이러한 고통을 담대히 받아들이고 삶의 한 부분이라고 인정하고, 자신의 성과가 보잘것없어지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계속할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삶의 자세이며 인간사의 경건하게 지속되는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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