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기한 것을 매우 좋아한다. 내가 접하지 않은 새로운 것들을 접하는 경험은 보통 즐거운 경험으로 남는다. 이러한 변화를 즉각적으로 반영해주는 장치가 있으니 만화경이다.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만ː화-경, 萬華鏡(만개의 빛나는 것이 있는 거울) :원통 속에 길쭉한 3개의 거울을 짜 맞추고, 한쪽 끝을 젖빛 유리로 막은 장난감. 안에다 색종이 따위를 넣고 들여다보면 온갖 형상이 대칭적으로 나타남.
kaleidoscope : kalos(아름다움) + eidos(형상) +scope(보다) =아름다운 볼거리.
만화경의 아름다움은 대칭에서 나온다.
만화경의 아름다움은 대칭을 기반으로 한다. 나뭇잎 조개껍질 눈의 경정체 등등 자연에는 대칭 형태가 많다. 다양성의 통일이라는 오랜 미의 정의에 그대로 들어 맞는다. 다양한 것은 정신이 사납다. 단순한 것은 쉽게 질린다. 하지만 다양성 속에 통일감이 존재 할때, 인간은 쾌감을 느낀다. 그 다양성의 통일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칭.
과학이 오락이 되어버린 케이스 , 만화경
오늘날 우리가 보는 만화경은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 살았던 데이비드 브루스터 경이 만든 것이다. 편광에 관한 '브루스터 법칙'으로 유명한 이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는 조명기구를 개선하고, 입체경을 개량 하는 등 광학기기의 개발에도 관심이 많았다. 만화경의 원리를 밝힌 그의 논문 <만화경론>이 발표되자 이 물건은 삽시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세상에 나온지 3년 후에는 이미 지구 건너편의 일본 땅에서도 제작되고 있었다. 만화경은 곧 상업적으로 제작되어,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많은 이들을 열광 시켰다.
브루스터는 거울의 반사를 수학적 광학적으로 탐구하려는 학문적 동기에서 만화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딱딱한 수학이나 광학보단 만화경이 연출하는 화려한 미적 효과에 더 마음이 끌렸다. 그들은 현실을 잊고 조그만 구멍을 통해 원기둥 속 다른 세계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를 더 좋아했다. 덕분에 만화경은 아얘 놀이 기구가 돼버렸다. 다른 광학기구들은 본디 장난감으로 제작되었다가 후에 과학적 도구로 받아들여졌지만 만화경은 반대인 셈이다.
상반된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 만화경
하나의 얼굴은 바로 차가운 수학의 얼굴이다. 만화경은 철의 필연성을 따른다. 그 속의 문양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학적으로 증식되고, 기하학적으로 산포된다. 만화경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은 바로 이 수학적 대칭의 아름다움이다.
또 다른 면모는 포근한 동화의 얼굴이다. 만화경은 집시의 요술구슬이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데려간 구멍처럼 그것은 보는 이를 순식간에 환상의 세계로 빨아들인다.
엄격한 수학적 질서가 만들어내는 몽환적 효과, 이 패러독스가 바로 만화경의 매력이다.
기술이 만드는 예술 , 만화경
만화경의 아름다움은 대칭에 있으나, 그 '대칭'을 만드는 것은 예술가의 손이 아니라 서로 마주보고 있는 거울들이다. 하지만 만화경을 만들기 위해 꼭 거울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화경은 굉장히 과학적인 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도 생성이 가능하다. 이 디지털 만화경도 아날로그 못지않게 환상적이다.
만화경은 거울의 각도에 따라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가 가능하다.
현대 예술에는 옵티컬 아트(optical art)라는 장르가 있다. 형태와 색채의 장력을 이용해 관찰자의 눈에 반응을 유발하는 예술이다.줄여서 옵아트라고 부른다. 옵아트는 관찰자를 착시에 빠뜨리거나 혹은 그에게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단순한 형태를 사방으로 복제해 끝없이 퍼져가는 프랙털의 대칭 구조를 만들어 나간다 (탈근대적 미로인 리좀과 충분한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가? 뒤로 들어간 것 같은가? 이렇게 정지되어 있으면서도 마치 들어갔다 나왔다 움직이는 듯한 지각을 주는 것이 옵아트의 특징이다. 이 작품은 '테이퍼드 미러' 만화경의 효과를 닮았다. 삼각의 거울 기둥을 앞에서 뒤로 갈수록 가늘어지게(삼각뿔!) 하면, 만화경의 내부에서 오른쪽의 이미지와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낸다.
불꽃과 같은 생성과 소멸 만다라
티벳의 승려들은 만다라 수행이라는 것을 한다. 여러 날에 걸처 색 모래로 정교한 그림을 그린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자 엄청난 공을 들인 만다라를 입으로 불거나 손으로 문질러 그림의 자취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만다라는 우주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원과 사각형의 대칭으로 이루어진 이 윤원구족 역시 만화경을 닮았다.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티베트 승려의 화려한 만다라도 완성되자 마자 바로 사라지고 만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의 말이다.
"불꽃놀이는 예술의 가장 완전한 형태다. 그영상이 최고 완성의 순간에 보는 이의 눈앞에서 다시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놀이에 열중한 아이에게 일상의 시간은 멈춘다. 놀이 속을 흐르는 것은 또 다른 시간대. 만화경도 마찬가지다. 만화경의 기둥 속에는 직선으로 흐르는 기독교의 시간과는 다른 불교적 시간이 들어있다. 만화경은 우리를 일상에서 빼내 새로운 시간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만화경 속의 요소(파츠)들은 유한하나,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조합은 무수히 많다. 고요한 거울의 방을 흐르는 것은 또 다른 시간, 유한의 조합으로 무한의 사태를 생성하는 영겁회귀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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