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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벌 도스또예프스키_사람의 본성과 죄에 대하여

도끼로 노파를 내리친 라스꼴리니꼬프. (리자베따가 제일 불쌍한 것 같다...ㅠㅠㅠ)

 

 음침하고 습한 유령의 도시와도 같은 18년대의 뻬째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살인자 라스꼴리니꼬프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의 대부분의 서술방식이 그러하듯 매우 구체적이고 평소에는 느끼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한 인물의 감정 표현과 외면의 비유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책의 줄거리는 식스센스급의 사건과 반전을 가지고 있다. 웬만한 웹툰보다 재밋고 충격적이니 직접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려운 내용들 임에도 플롯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지니고 있어 잘 읽히는 편이다.

 

 


책을 읽으며 작가와 등장인물들이 던졌던 질문들을 같이 생각해보자.

 

 

 

Q 1. 죄를 짓는 혹은 추악한 짓을 하는 사람을 또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죄인가 아닌가?

 

 주인공은 전당포에서 서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노파를 죽인다 라는 생각을 사건이 벌어지기 한달전에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로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노파의 이복동생인 리자베따가 사건이 일어난 뒤 전당포에 나타난다. 그녀는 키가 180이 넘고 예쁘지는 않지만 눈에서 보이는 그 순함을 가지고 있고 이복누나인 노파에게 거의 노예부리듯이 순종하는 여자이다.주인공에게 리자베따는 거의 고려되지 않았지만 그자리에 그 순간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너무나 겁에 질리면 울음과 소리 또한 지르지 못하듯이 벌벌 떨고 있는 그녀마저 죽인다.

 

주인공의 사상은 니체의 위버멘쉬(한국어번역 초인)을 생각나게 한다.

 

그는 여러 상념들 중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론을 행한 것일 뿐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 이론은 즉슨 세상에는 평범한 인간과 범인으로 나뉜 다는 것이다. 범인의 예로는 나폴레옹을 예로 들면서 그가 저지른 일들 또한 자신의 일과 같으며 다른 것은 주인공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는 사실과 그 위대한 일의 첫걸음, 피를 자신이 견디지 못 하리란 사실. 그리고 범인들은 자신과 같이 "이것은 옳은 행위인가 ? "라는 의문조차 가지지 않고 행하리라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녀를 죽음으로써 수많은 선행을 한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 독재자를 척결한다든지 친일파를 죽인다든지 여러가지 다양한 변주를 하며 적용될 수 있다. 

 

자신의 신념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악인을 죽인 것과 좋은 대의명분을 위해 악인을 죽인 것에는 차이가 있는가? 

 

살인 뒤에 벌어지는 일, 예를 들면 그 노파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과 그 죽인 사람이 가지고 자신에게 쓰는 것 또는 라스꼴리니꼬프가 했던 상상중에 하나인 자신의 성장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하고 나중에 베푸는 것 이런 여러가지 상황에는 과연 차이가 있는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인정해야하는가? 법률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등의 물음이 저 질문에 꼬리를 물게 된다.



고대에는 대부분 등가교환과 같이 죽음->죽음으로 갚았다. 원칙적으로는 그 이유를 묻지 않은 것이다. 법이 발달하고 생긴 것중에 하나가 심신미약이라는 개념이다. 술을 먹든 정신병에 걸리든 우울증에 걸린 상태이든 그것이 정상참작이 되는 경우와 판례가 생긴 것이다. 주인공 또한 모든 상황중 다른 사람이 대신 범행으로 잡혀갈 상황에 자백을 한 것과 살인을 저지르기전 부터 심신이 미약했다는 여러 증거와 증인들 , 그리고 노파로 부터 훔친 금액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과 그 금액조차 모르는 것 그가 자신의 죄를 감형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늘릴려고 하는 점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 등등 여러 상황들이 그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어 두명을 죽였음에도 겨우 8년 형을 받게 된다.

 

Q 2. 사람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

 

 이것은 글을 읽어 나감에 있어서도 질문이 들었다. 수많은 묘사와 정말 디테일한 이야기들은 내 28년 삶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또는 경험할 일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었다. 개연성..? 또는 미메시스하는 능력이 극대화 된다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작가가 주인공이 자신의 이론을 실험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이는것 아니, 이론을 실천하는 것과 다른 종류의 죽음등의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수많은 영화들이나 소설들 또한 감독이나 작가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을 법한 이야기들을 내놓지 않는가..? 우리는 그것을 보며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가끔은 나 자신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이는 자기 자신을 제일 잘아는 것은 자신이다. 라고 말하고, 어떤이는 주변에서 너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 오히려 당신을 더 잘 알수 있다. 라고도 말한다.

 

 라스꼴리니꼬프와 그의 곁을 평생 지키기로 마음먹은 , 아니 그렇게 하는 소냐와의 관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라스꼴리니꼬프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자기가 바라보는 것과 소냐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달랐다. 그리고 완전히 달랐던 것이 그에게는 구원의 씨앗이 되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는 그것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심장으로 느꼈다.>라는 비스무리한 문장이 나온다. 내가 이 맥락을 기억하는 것은 이해하는 것과 아얘 그것보다 더욱 빠르게 무의식적으로 느껴버리는 것. 무언가를 인지하거나 깨닫을 때 그런 차이도 존재하는 것이다.



 @

1. 도스또예프스키의 책을 읽는 기간에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몸짓에 집중하고 관찰하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2. 이 책을 읽던 도중 친절한 금자씨를 보면, 이영애의 복수 후 카메라를 보는 표정이 정말 소름끼치게 느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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