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
기독교에 대한 여러 미디어와 단편들로 생긴 오해들과 편견들에 대해 조금 더 중립적이고, 그들의 사고와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좋은 책. 저자는 여러 믿지 않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과 오해와 불신들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눈 사람이다.
무언가를 거부하기 전에 진정으로 이해해보려는 과정은 특히 오늘날에 와서 더욱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논쟁이 오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배워나가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시야가 트인다.
아직 풀리지 않은 여러 실마리들과 생각들이 있다. 한 번에 다뤄지기 매우 힘든 주제들이 많다.
인류 세상의 죄악과 악함은 왜 존재하며, 인간의 자유 등 저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반추해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서 개인의 가치관/도덕성을 떼어놓고 정의를 논하기 힘들다는 맥락이 나오는데 이 책의 내용과도 맥이 닿는 부분들이 많이 발견된다(함께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여러 무신론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들 생각에 대한 근거 또한 제안해보길 바라고 있다. 무신론이라는 서사적 가치관 또한 신앙의 한 종류이며, 왜 그렇게 믿게 되었는지 의심을 의심해보라고 조심스럽게 권유한다. 기독교에 신이 있음을 증명해보라고 말하려면 왜 신이 없는지도 한번 생각해보고 증명해보려고 노력해보라고 권한다.
#목차 중 Part 1은 각자의 답과 근거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1. 배타성 –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2. 악과 고통 – 하나님이 선하다면 왜 세상에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3. 속박 – 기독교는 인간의 자유를 옥죄는 오랏줄인가?
4. 기독교의 불의 – 교회에 다니는데도 왜 불의한가?
5. 심판 –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지옥으로 보내실 수 있는가?
6. 과학과 기독교 – 과학이 기독교 신앙이 틀렸음을 증명해 낸 것 아닌가?
7. 성경 – 성경의 기적을 어떻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가?
위의 의문들에 대한 저자의 단편적인 글을 소개한다. 7가지 중 평소에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Part 1이라도 직접 읽어 보기를 권한다.
1.배타성
“…. 흔히 근본주의는 폭력으로 이어진다고들 하지만, 지금껏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너나없이 스스로 다른 믿음들보다 우월하다는 근본주의적이고 입증할 수 없는 신앙에 깊이 몰입하고 헌신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정말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떤 근본주의적인 신앙들이 그 추종자들을 이끌어 의견이 다른 이들의 눈에도 더없이 사랑스럽고 끌어안을 만한 인간으로 만들어가는가?”하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배타적일지라도 따르는 이들을 겸손하고 평화를 사랑하게 만드는 쪽으로 이끄는 일단의 신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초기 크리스천들의 신앙과 행동 사이의 관계를 당시 문화와 비교해보면 역사의 역설이 드러난다.
그리스-로마 세계의 신앙관은 개방적이어서 거의 방임에 가까워 보일 지경이다…..초기 크리스천들은 다양한 민족과 계층 출신들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스캔들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그리스-로마 세계는 가난한 이들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크리스천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넉넉히 베풀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그처럼 배타적인 확신 체계가 다른 이들에게 그토록 개방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크리스천들은 신앙 체계 속에서 헌신적으로 섬기고 너그럽게 베풀며 화해를 이룰 더없이 강력한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의를 저질렀던 일들을 눈 질끈 감고 가볍게 넘어갈 순 없다. 하지만 크리스천의 가장 근본주의적인 신념에서 나오는 힘이 이 어지러운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56~57p
2. 악과 고통
“…..요셉의 사연을 본문으로 설교할 때마다 동일한 경험을 한 이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듣는다. 세상을 잘사는 데 꼭 필요한 요소들은 대부분 더없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온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비극적인 일 자체를 고마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이런 이들은 거기서 얻은 통찰과 성품, 용기를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눈이 뜨이면 삶 가운데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의 이면에 깔린 합당한 이유를 일부나마 알 수 있는 법이다. 하나님의 시점에서 보자면, 온갖 고통과 고난에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가정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62~63p
“…요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이유는 페어플레이어와 정의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루이스는 알아차렸다. 다들 인간은 고통을 당하거나 소외되거나 굶어 죽거나 억압당하지 않아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연도태라는 진화론의 메커니즘은 죽음,파멸,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 따위에 의존한다. 이 모두가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발상이다. 그렇다면 무신론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자연계가 몹시 그릇되고 불공정하며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65p
>이 구절의 소제목은 [악과 고통은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증거가 될 수 있다.]이다.
3.자유
“…한번은 어떤 친구가 C.S. 루이스에게 물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루이스는 대꾸했다. “사랑하고 있는 이들에겐 쉽지.”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를 기쁘게 해주고 싶게 마련이다. 누가 나서서 부탁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든 다 해 주려고 한다. 상대를 즐겁게 해 줄 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연구하고 공부한다. 그러고는 서슴없이 그 일을 한다. 돈이 들고 큰 불편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감수한다. “말만 해요, 바르는 건 뭐든지 다 할게요!” 겉만 보고 어안이 벙벙해진 친구는 ‘완전히 코가 꿰이었군.’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랑에 빠진 당사자의 속마음은 천국이 따로 없다.”
96p
4. 기독교의 불의
“…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에 기대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게 성경의 핵심 메시지이다. ……훌륭한 성품은 주로 사랑이 넘치며 안전하고 안정된 가정과 사회 환경(우리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비롯된다.….자, 이제 다치고 깨진 과거를 지닌 누군가가 크리스천이 되고 성품도 예전에 비해 한결 나아졌다고 생각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돼서 신앙적인 소속감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은 이보다는 안정감과 자기절제가 부족할 수 있다…… 박물관을 찾는 이들보다 병원을 들락거리는 이들의 건강이 비교적 더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103p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죄성을 깨닫고 은혜를 바라는 것이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에 따른 부산물이다.
5. 심판
“심판하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화해의 기대를 품고 적들을 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만스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하나님이 불의와 거짓에 분노하지 않고 폭력을 영원히 끝장내지 않는다면, 그러한 하나님은 예배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폭력에 의지하는 흐름을 스스로 완전히 차단하는 유일한 수단은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올 때만 폭력이 합법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길뿐이다….서방 세계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비폭력을 실천할 수 있다는 내 주장은 ….서방세계….다수 대중의 환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비폭력은 심판을 거절하는 하나님을 믿는 결과라는 논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한적한 시골집의 평온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뜨거운 햇볕에 타들어 가는 대지,모고한 피가 흥건한 땅에서는 자유로운 사고에 고분고분 따르는 포로들과 함께 어김없이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현대인들은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민중을 마비시키는 진정한 아편은 한번 죽으면 그만이고 그 뒤엔 아무것도 없다는 믿음, 달리 말해 배신과 탐욕, 비겁, 살인 따위에 심판이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엄청난 위안이다…. 하지만 종교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행위는 사라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
131~133p
###사랑의 하나님=심판의 하나님
왜 서구의 회의론자들은 사랑의 하나님은 믿고 열렬히 환영하면서 심판의 하나님만 보면 그렇게 치를 떨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의 생각 또한 편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누군가를 정말 아끼면 그 사람의 방황과 제대로 살지 못하는 모습들에 화가 난다. 사랑의 반대는 분노가 아니다. 무관심과 냉담이다.
###진정한 지옥=이기적이고 자신만 알고 영원히 사는 그 공간
성경에서 지옥을 불에 표현하기는 한다. 그게 진짜 불일까?(저자도 보지 않았으니 알 길은 없겠다만 그는 계속해서 설명한다)지옥은 진짜 불이라기보다 자신만의 중독, 자기 중독된 상태부터 시작되는 그 어떤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6. 과학과 기독교
“반면에, 진화를 ‘철학적인 자연주의’(생물은 임의적인 힘의 산물이며 그 누구의 개입도 없이 태어났다고 보는 시각)로 받아들이지 않지만 단순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크리스천들도 적지 않다. 진화를 자연도태의 산물에 적용하듯 인간이 믿는 모든 사실들을 설명하는 포괄적인 이론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의 무대에 선 셈이 된다. 만사를 다 아우르는 이론이 된 진화는 세계관이 되기에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을 안고 있다. ”
“만일 진화가 사물의 존재 방식을 바라보는 세계관의 지위로 올라간다면 성경적인 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할 것이다. 하지만 진화가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인 가설 수준에 머문다면, 창조주를 믿는 크리스천의 생각과 하나님이 창조 과정을 시작하신 방식에 대한 과학적 탐사 (생물학적인 차원의)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 ”
7. 성경
“십자가 사건이 정말 일어난 게 아니라면, 기독교 운동을 이끌었던 초기 지도자들은 왜 그런 얘기를 지어낸 것일까? 그리스 문화에서든 유대 문화에서든, 복음을 듣는 이들은 십자가 사건 대목에서 반사적으로 범죄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사실은 이러저러하다고 말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거운 사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하나님께 물었다는 이야기를 꾸며 낼 까닭은 또 무엇인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부르짖더라는 사연을 굳이 만들어낼 필요가 있을까? 이런 기사들은 1세기의 예비 회심자들을 불쾌하게 하거나 헷갈리게 할 뿐이다. 듣는 이들로서는 예수는 한없이 약한 데다가 하나님을 실망시킨 인물이라고 결론 내기 쉽다. 증언 부분을 봐도 그렇다. 법정에서 인정받지 못할 만큼 여성에게 낮은 지위를 부여했던 사회에서 하필이면 여인들을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로 꾸밀 이유가 있겠는가?”
“복음서들의 문학 형식은 너무나 섬세해서 전설이 될 수 없다”
### 도덕성과 신의 존재
자연을 살펴보면 강자가 약자를 누르고 죽이는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계에 속한, 진화론에 속한, 적자생존의 세계관에 속해 있는 인간이 만약 그렇게 하는 것을 본다면 당신은 어떻게 느끼는가? 아기들을 모아놓고 폭탄을 떨어뜨린다거나, 홀로코스트를 권장한다거나 하는 것은 자연의 입장에서/ 근본적 진화론자들의 입장에서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 우리는 분노, 죄책감을 느끼는가? 이러한 도덕성은 인간과 자연이 아닌 다른 외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도덕성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다수결로 합의를 한 것이 아니라, 발견되고 이미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야기다. 만약 다수결로 그것이 옳다라고 합의하면, 그렇다면 그것에 반대되는 소수의 의견은 무시당해도 되는가?
도덕성으로 대표되는 인권은 어떠한가? 인권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개인과 개인들의 합의? 이타적인 삶 자체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그것이 계속 유전되어 지금까지 왔다고 진화론자들이 주장한다. 왜 그것이 유리한가? 친족들까지 그런 영향이 끼쳤다면 나머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적대시하는 문화가 살아남았어야 한다.
###기독교에서의 죄성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와는 매우 다른 의미다. 무언가를 잘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여 피해를 주는 것은 굉장히 법률적인 의미의 죄이다. 기독교에서 죄는 ‘하나님 앞에 서기를 바라지 않는 절망적 상태’라고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바라고 섬기며 산다. 성과, 좋은 엄마,아빠, 로맨틱한 사랑, 친구, 돈, 권력, 자유에의 의지 등이 그러하다. 아니다. 나는 그 무엇도 섬기지 않는 자유의지의 인간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그러한 자유의지를 섬기며 살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터 위에서 가치를 세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만을 섬기는 것은 모래성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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